일본은 ESG를 정책, 산업, 금융 전반을 아우르는 전략적 프레임워크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와 ‘기업지배구조 코드’를 중심으로 한 법제도 기반은 기업의 경영철학을 실질적으로 바꾸고 있으며, 정부의 정책적 인센티브와 산업 재편 전략은 ESG 기반 생태계를 빠르게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ESG 법제도 흐름, 정부의 전략적 지원 구조, 그리고 강화되고 있는 환경 규제의 방향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제도화된 ESG: 일본이 ESG를 ‘공공정책’으로 다루는 방식
일본은 ESG를 ‘자율적 선택지’로 보는 대신, 정부 주도의 명확한 제도와 기준 속에 포함된 공공정책의 일부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주목할 제도는 2014년 도입된 ‘일본 스튜어드십 코드(Japan Stewardship Code)’입니다. 이 코드는 기관투자자에게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책임 있는 의결권 행사와 장기적 투자 전략을 요구하며, ESG 개념을 투자 프로세스에 직접 통합시킨 첫 제도였습니다. 이후 2015년에는 ‘기업지배구조 코드(Corporate Governance Code)’가 발표되면서 일본 상장기업은 이사회의 다양성 확보, 경영의 투명성,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 등을 구체적으로 반영하게 됩니다. 이는 ESG 중 'G(거버넌스)' 요소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강력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TCFD)’ 권고안이 본격 반영되며, ESG 정보 공시가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도쿄증권거래소 프라임시장에 상장된 기업을 중심으로 TCFD 기반의 ESG 보고서 작성이 사실상 의무화되었고, 금융청(FSA)은 이를 정기적으로 평가해 투자자와의 신뢰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ESG가 단순한 비전 선언이 아닌, 실제 ‘정보공시와 규범의 체계 안에 포함된 실천사항’임을 보여줍니다. 즉, 일본은 ESG를 법적·제도적 장치로 고도화하여, 기업 활동의 기준점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ESG를 확산하는 방법: 자금, 제도, 산업의 전방위 지원
일본 정부는 ESG를 장려하기 위해 재정·제도·산업정책을 전방위적으로 연계하고 있습니다. 경제산업성(METI)은 ‘ESG 투자 활성화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ESG 관련 성과가 우수한 기업에 대해 세제 감면, 금융 우대, 기술개발 자금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청은 ESG 전환이 어려운 중견·중소기업을 위해 ‘ESG 경영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실질적인 컨설팅 비용과 시스템 전환 비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ESG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구조"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ESG 정책이 단순한 지원책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전략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그것이 ‘산업정책’과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2020년부터 본격 시행 중인 ‘그린 성장전략(Green Growth Strategy)’은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14개 산업 분야를 지정하고, 산업군별 기술개발 로드맵과 규제 완화, 예산 편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전략은 ESG 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우선 배정, 기술개발 R&D 예산 확대, 수출입 정책 연계 등 실질적인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ESG를 실행할 유인을 만들어줍니다. 또한 ESG 관련 채권 시장도 정부 주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그린본드' 및 '지속가능채권' 발행 확대를 장려하며, 투자자 보호 기준을 강화하고 발행 투명성을 제고해 ESG 금융시장의 신뢰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ESG 정책은 단순한 기업 규제나 도덕적 요구가 아닌, 국가 차원의 산업 전략이자 미래 성장전략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ESG 실천을 가속화하는 ‘환경규제 2.0’ 시대
일본의 환경정책은 ESG 실천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2050년 탄소중립 선언 이후, 환경 관련 법령과 규제가 새롭게 정비되고 있으며, 기존의 산업 중심 규제에서 지속가능성과 환경책임 중심의 ESG형 규제 프레임워크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지구온난화대책추진법’이 있습니다. 이 법은 2022년 개정되어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게 온실가스 배출량 자발 공개를 요구하고 있으며, 2025년부터는 의무적 보고 시스템이 본격 시행됩니다. 플라스틱 자원 순환 촉진법 역시 생산단계부터 재활용 가능성을 고려한 제품 설계를 유도하며, 기업의 전체 밸류체인에서 환경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품 설계, 유통, 폐기까지 전 과정에 ESG를 내재화하는 흐름을 상징합니다. 또한 최근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는 일본 ESG 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일본 정부는 일부 산업에 대해 배출권 거래제와 탄소세를 혼합한 시범사업을 도입하고 있으며, 향후 ESG 평가 요소로서 탄소배출 감축 실적을 본격적으로 반영할 계획입니다. 이는 단지 환경문제 대응 차원을 넘어, 기업의 경영 리스크와 수익성까지 ESG 평가에 포함시키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일본의 이러한 규제 강화는 일방적인 제한이 아니라, ESG 실천을 유도하는 ‘정책적 신호’입니다. 정부는 환경 규제 이행 기업에 대해 법인세 감면, 공공 조달 우선권 부여, 기술개발 지원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으며, ESG를 이행하지 않는 기업은 투자와 금융 측면에서 점점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이처럼 환경규제는 일본 ESG 정책의 실효성을 보장하는 핵심 실행장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ESG를 단순히 기업의 ‘착한 이미지 전략’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정책, 산업, 금융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경제 생태계 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법제도는 행동 기준을 만들고, 정부는 실질적 자금과 제도로 그 기준을 실천 가능하게 하며, 환경규제는 외부 압력을 통해 실행력을 높입니다. 이러한 일본의 ESG 정책은 단기적 효과보다 장기적 생존력과 경쟁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기업과 기관들도 일본의 이 같은 시스템적 접근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SG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기준입니다. 일본은 이 기준을 국가 전략 안으로 깊숙이 편입시키며, 전 세계 ESG 흐름 속에서도 독자적인 방향성을 구축하고 있습니다.